산책로의 모든 글
소요에 피어난 글들을 천천히 둘러보세요
겨울 서재
난로가 식어 가는 동안나는 한 권의 책과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 창밖에는 눈,창 안에는 활자,그 사이에 나의 더운 숨 겨울은읽기 위해세상을 잠시 덮어 두는 계절…
달빛 우체국
눈이 많이 오던 밤, 토끼는 달빛으로만 운영되는 우체국을 발견했어요. “여기서는 어떤 편지를 부치나요?” 토끼가 물었어요. 우체국장 부엉이가 대답했어요.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란다.” 토끼는 오래 망설이다가, 지난…
느림의 미학 — 소요(逍遙)의 정신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는 목적 없이 거니는 일을 가장 높은 자유로 보았다.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거니는 그 자체가 목적인 삶. 오늘의 읽기는 너무 자주 ‘소비’가 된다. 스크롤은 빠르고, 문장은 짧아지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정류장에는 늘 같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뭘 기다리세요?”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노인은 빈 화단을 가리켰다. “저기 작년에 튤립이 폈거든.” 봄을 기다린다는 건 어쩌면, 아직 …
오래된 우산
현관에 우산이 너무 많다. 그중 절반은 살이 부러졌거나 손잡이가 헐겁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한다. 우산에는 각자의 비가 묻어 있다. 첫 출근 날의 소나기, 누군가를 배웅하던 밤의 가랑비, 혼자 맞기로 한 어느 오후의…
장마
비가 오는 날엔 책장이 더 잘 넘어간다. 바깥의 소란이 모두 빗소리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장마는 도시를 잠시 멈춰 세운다. 우산 아래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리게 걷고, 처마 밑에서 모르는 사람과 같은 풍경…
유월
창을 열면초록이 먼저 들어선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빛이마당을 천천히 건너가고 나는 다 자라지 못한 문장을유월의 그늘에 잠시 맡겨 둔다 서두르지 않아도여름은 온다…
유리병 편지
그해 여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보낸 이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다른 계절에 가 있을 겁니다.”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파도 소리가 …
햇살을 줍는 아이
— 아침햇살 동화 — . 해가 막 떠오르던 어느 아침, 정원에는 햇살을 줍는 아이가 살았어요. 아주 오래된 정원 한가운데, 해온이라…
계절을 읽는 법
도시에 살면 계절을 잊기 쉽다. 냉난방이 완비된 실내에서, 계절은 옷차림의 문제로 축소된다. 여름에는 반팔, 겨울에는 패딩. 그 정도. 그러나 계절은 단순한 기온의 변화가 아니다. 계절은 세계가 자신을 갱신하는 리…